노르웨이 숲을 가다
작성일 : 20.02.13   조회수 : 1279

2019. 7. 5 ~ 7.13

 

지난여름에는 아이들이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제국으로 칠순여행을 보내주었다. 지난 10여 년 수목원 조성에 온힘을 바치고 있는 아비를 격려하여 더 큰 나무들과 그 숲을 실컷 구경하라는 아이들의 마음씀이 고마운 것을 현지에서 더 크게 느꼈다. 노르웨이의 숲과 자연이 빚은 빙하가 녹아 만들어진 좁고 깊고 장대한 피오르와 만년설에 푹 파묻혔다. 태고의 나무들과 파란 빙하 물들이 느리게 사는 방법을 체득하라고 채근한다. 버킷리스트에 오른다는 플롬 산악열차 탑승도 그중 하나였다. 손때 묻지 않은 자연은 그대로인데 사람들만 그 풍경을 자기 분수만큼 담으며 스쳐 지나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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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르를 따라 항해에 나선 크루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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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설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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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가 녹아내리는 물과 노르웨이 숲.

 

노벨상 중 가장 대표적인 노벨평화상만은 스웨덴이 아닌 노르웨이가 주관하여 오슬로 시청에서 수여한다. 노르웨이를 백년 가까이 지배했던 업보를 씻으려는 스웨덴 백만장자 노벨의 인간적 배려인지도 모른다. 거대하고 화려한 벽화 속의 시청사 수상식장에 섰던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을 떠올리고 그때의 동선動線을 따르며 감회에 젖는다. 사람은 이런 족적足跡들을 남기고 살다 가야 한다고 웅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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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오슬로 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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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바이킹 박물관.

 

오슬로 사람들의 얼굴이 평화스럽게 윤기가 나는 것은, 1970년대 개발한 북해 유전 덕택으로 개인소득 8만 달러 주변의 세계 1등 국가의 사회복지제도가 사회 안전망으로 뒷받침되어서 때문일 것이다. 3만 달러 주변의 우리나라 사회복지학 교수들이 오매불망 그려보는 스칸디나비아 제국의 사회복지는 우리에게는 신기루에 불과할 수도 있다. 우리의 사패산 터널의 5배가 넘는 24.5km의 세계 최장의 터널을 통과하는 색다른 경험도 한다. 북한의 땅굴파기를 지원했다는 스웨덴 기술력의 결실이란다. 운전자의 안전을 위해 마련한 서너 곳의 파란 조명굴은 오로라인 듯 평화롭다. 갑자기 부자가 된 척박한 바이킹의 후손들은 중동 사막의 석유부자들처럼 황금으로 나대지 않고 차분하게 후손들에게 물려줄 건강한 노르웨이의 숲을 위해 미래를 준비하는 것 같다.

바이킹박물관에는 9세기 영국과 프랑스에 위세를 떨쳤던 바이킹 제국의 함성을 듣는 듯하다. 나침반도 없이 별자리에 의존해 북해를 넘나들었던 바이킹선 뱃머리의 아름다운 조각상들과 박물관 입구에 세워둔 약탈기념비 룬스톤이 생존투쟁과 탐욕의 묘한 콘트라스트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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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스톡홀름의 바사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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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로 보면 바이킹 후예의 냄새가 물씬 나는 17세기 초 스웨덴 해군 전함을 인양하여 실물을 놓고 그 위에 박물관을 지었다는 스톡홀름의 거대한 바사 박물관이 상상을 초월한다. 바이킹의 후손인 스칸디나비아 제국의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가 바이킹 마케팅으로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하는 듯싶다.

 

노르웨이가 낳은 세계적 조각가 비겔란의 작품을 모은 드넓은 오슬로 조각공원은 비겔란의 분수대 조각이 압권이다. 넓은 공원 끝부분 정상에 있는 ‘모놀리트’Monolith는 높이 17.3m의 거대한 화강암 기둥에 121명의 남녀노소가 서로 정상을 향해 기어오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들이 부조되어 있는 탑으로 인간의 본성을 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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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겔란의 분수대 조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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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겔란의 모놀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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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슬로 뭉크 미술관에서.

 

오슬로 작은 언덕 위의 예쁜 뭉크 미술관에서는 그의 대표작 절규가 여러 가지 색의 버전으로 4종이 있음도 보았다. 이 작품은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개막일에 도난사건으로 유명해졌고, 10년 뒤 두 번째 절도사건으로 더욱 유명세를 탔다. 뭉크는 노르웨이 화폐 1천 크로네에 그의 사진이 올랐다. 항상 그러했듯이 인쇄본 몇 가지 작품을 구입했다. 서울에서 표구해 현장의 감동을 나눌 셈이다. 노르웨이의 제 2도시 베르겐에서는 젊은 날 마음을 흔들었던 솔베이지의 노래를 작곡한 그리그의 기념관이 반가웠다. 그리움과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볼 수 있다는 소망의 선율이 바이킹 항구를 뒤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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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겐 항구. 옛날 바이킹 선단이 이곳에서 정복의 닻을 올렸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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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 시청사 골든홀.


유럽 도시들은 전통적으로 시청과 광장과 성당과 시장이 어우러지지만, 베네치아 궁전을 연상시키는 스웨덴 스톡홀름의 시청사는 유난히 아름다운 예술품이다. 8백만 개의 붉은 벽돌과 1천8백만 개의 금 모자이크로 장식했다고 한다. 금으로 모자이크된 골든홀에서 웅장한 멜라렌 호의 여왕 그림 아래 노벨상 수상자들의 무도회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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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 시청 시의회 회의실 천장에도 바이킹선의 부활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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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 시청사 앞 잔디광장과 우람한 올리브나무.

 

견고한 벽돌탑의 요새인 시의회 천장은 바이킹 선이 얹혀진 모습이다. 그들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바이킹선이 하늘을 날고 있다. 백 미터가 넘는 시청사 탑이 여기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손짓하는 듯하다. 시청사 앞의 거목인 올리브나무 위 북유럽의 하늘이 오늘따라 푸르고 푸르다.

 

스톡홀름에서 핀란드의 헬싱키까지는 크루즈 선을 타고 처음으로 바다 위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무도회장이나 수영장이 있는 호화 유람선이 아닌 거대한 다국간 여객선이다. ‘바이킹 호’라는 이름을 새긴 크루즈도 스쳐 지나갔다. 핀란드는 백 년 동안 지배받은 러시아의 풍모가 느껴지는 고즈넉한 전원풍경이다. 민족과 종교와 언어가 스칸디나비아 제국과 다르기도 하다. 헬싱키 광장에 우뚝 선 온통 하얀 루터란 대성당의 위용과 바위언덕을 파헤쳐 건축한 암석교회가 인상적이었다. 교회는 하늘 가까이 치솟게 짓는다는 고딕양식의 통속을 유쾌하게 뒤엎은 건축가의 겸손한 혜안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햇볕과 성가의 울림과 공명까지 계산된 돔이 씌워진 경건한 공간은 더욱 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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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즈선 이름에도 바이킹 마케팅이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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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헬싱키 광장에 우뚝 선 루터란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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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딕양식과는 거꾸로 바위언덕을 파헤쳐 건립한 헬싱키 암석교회.

 

유명하다는 오로라나 산타마을이나 사우나를 구경할 수 없는 아쉬움을 자작나무의 향기가 어린 자일리톨 껌으로 대신했다. 시청 광장 앞 조그만 노점에서 처음으로 내 큰 머리에 안성맞춤인 모자를 구입하는 나만의 작은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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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코펜하겐의 어드미럴 호텔 로비.

이 호텔은 공병대 막사의 원형을 보존한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묵은 궁전 앞 어드미럴 호텔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라 한다. 제국의 거대한 공병대 막사를 원형을 살리며 호텔로 개조해서인지 원목 그대로의 대들보와 서까래가 현대식 호텔방을 가로지르며 근대의 숨결이 같이한다. 작은 바다길 건너편의 현대식 오페라하우스의 웅자와 비교되어서 더욱 그런지도 모른다. 새벽 산책길에 마주친 예쁘게 꾸민 호텔 옆 작은 공원의 주목나무 나무담은 신선한 충격을 준다. 바깥과 안을 구획하는 경계를 이렇게 낮은 나무담으로 둘러 안팍을 공유하게 하는 지혜가 번뜩인다. 우리도 회양목, 측백, 사철나무들로 이런 시도를 해보지만 주목나무의 나무담은 고급스러울 수밖에 없다. 몇십 년 전에 보았던 베르사유 궁전 정원의 키 큰 나무들 모습도 스쳐갔다. 이 감동이 일상에 묻혀 잦아들기 전에 빨리 우리 수목원에 옮기고 싶었다. 지난가을 동네에서 구입한 10년생 주목 1천 그루를 무릎 높이로 잘라 우리 수목원의 반송밭 길가를 나무담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벌써 산만한 산야가 단정한 정원의 녹색띠로 차분하게 자리 잡는다. 두세 달 더 고생하면 산책길 굽이굽이를 야트막한 주목의 녹색담이 에워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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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펜하겐 궁전 앞뜰의 주목나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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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만들기 시작한 나남수목원 반송밭의 주목나무담.

 

1미터도 되지 않는 인어공주 조각상은 어린 시절 교과서에서 본 그대로의 동화이다. 잊힐 만하면 예정된 도난사건으로 세계 여론을 달구어 관광사업을 북돋는 그들의 하얀 거짓말이 그렇게 밉지는 않다. 가로등이 유별나게 전주 없이 철선으로 하늘에 매달려 있다. 젊은이들의 꼬인다는 운하 옆의 ‘니하운’은 번잡하기만 했지 무엇을 먹었는지도 기억에 없다. 유명하다는 아이스크림은 30년 전 모스크바 붉은광장 옆 굼백화점 골목에서 몰래 팔던 걸 사 먹은 그 맛을 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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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펜하겐 시내의 전신주 없이 하늘에 매달린 가로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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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하운의 젊은 물결들.

 

죽음에 이르는 병을 쓴 덴마크의 종교적 분위기 안에서 골치 아픈 논쟁가이자 고립된 존재였던 키르케고르의 좌상을 보다가 그 옆에 우뚝 선 50년이 넘는 자작나무의 우락부락한 밑둥에 눈길이 멈췄다. 자작나무가 맞나 하고 눈을 치켜뜨면 숲의 귀부인이라는 매끈한 자작나무의 자태 그대로가 아닌가. 자작나무를 30년 동안 키우면서 발끝에서 머리까지 하얀 몸통의 자작나무밖에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월의 이끼가 끼면 어느 나무나 그러하듯이 자작나무도 젊은 미모보다도 본연의 건강한 생명력을 이렇게 보여주는 것이다. 러시아나 이곳 북유럽에서도 지천으로 자라는 자작나무들의 모습에 건성으로 박수를 보내면서도 그 밑둥을 살펴볼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전체를 보지 못하고 얄팍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세월의 무게를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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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귀부인인 자작나무가 반백 년이 넘으면 밑등은 이렇게

매끈한 미모보다는 원초적인 생명력으로 강인해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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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이르는 병>의 작가 키르케고르 좌상 옆의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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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부분이 사람 손길로 반질반질해진 안데르센 좌상.

 

키르케고르와 동시대인이자 비판을 주고받는 사이던 안데르센의 광장 앞 좌상은 사진찍는 관광객의 손길로 반질반질하다. 10여 년 전 미국 보스턴의 하버드 대학에서도 이 대학에 입학하고픈 소망들을 담은 손길로 이처럼 반질반질해진 하버드 좌상의 구두가 생각났다. 안데르센의 미운 오리새끼는 오리들 틈에서 돋보이는 백조가 되는 반면, 키르케고르의 기러기는 날지 못하는 거위들을 날게 하려고 돕다가 결국은 공상적 바보라는 비난을 거위들에게 듣는다. 우리의 삶도 이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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